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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즈스타일] 박유환 “순한 동생 같아 보인다고요? 실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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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헤어
12-02-15 09:12 | HIT : 13,388

레이디경향

말간 수채화 같다. 박유환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드는 생각이다. 어떠한 이물질도 섞이지 않은, 불필요한 덧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물을 적신 붓에 물감을 묻혀 그리면 이런 얼굴이 될까? 작은 얼굴 위로 오밀조밀 자리한 이목구비는 세밀한 붓으로 정성들여 그려 넣은 듯 수줍고 말끔하다. 덕분에 그가 움푹 파인 보조개를 드러내며 활짝 웃을 때도, 두 눈 가득 그렁그렁한 눈물을 담았을 때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설렌다.



'문권'으로 살면서 얻은 보람과 성취감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SBS-TV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유독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누나 서연(수애 분)을 향한 박유환(22)의 맑은 얼굴이었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가는 누나를 바라보며 아무리 참아도 삼켜지지 않는 울음을 터트릴 때, 사랑이 담뿍 담긴 눈빛으로 자신보다 더 끔찍이 누나를 챙길 때, 불안해하는 누나 앞에서 장난기 어린 환한 웃음을 지을 때 시청자들은 문권(박유환 분)과 함께 울고 웃고 아파하고 안도했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정면으로 짊어진 주인공보다 그 곁에서 함께 견뎌내는 사람에게서 더욱 절실한 공감을 얻게 되듯이, 우리는 문권을 보면서 더 깊이 상황에 몰입할 수 있었다.

드라마 속 서연도 그랬다. 알츠하이머 증세가 악화되면서 서연에게 고맙기만 하던 고모는 그냥 아줌마가 되었고, 절실하고 애틋했던 남편은 그냥 아저씨가 됐다. 하지만 동생 문권은 자신을 거의 놓아버리게 된 그 순간까지도 끝까지 동생 문권이었다. 스러져가는 그녀의 기억에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남은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극중 인물들도,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모두 이처럼 완벽하게 드라마 속 상황에 빠져들 수 있었던 데는 실감 나는 열연을 펼친 박유환의 힘이 컸다. 주인공인 수애와 김래원에 견줄 만큼 커다란 존재감을 빛낸 그는, 아직 데뷔한 지 채 1년도 안 된 신인임에도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매사에 누나밖에 모른다고 해서 '누나 바보', 너무나 완벽해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해서 '화성인 동생'이라는 애칭까지 생겼을 정도. 그 여세를 몰아 요즘에는 '국민 남동생'으로 불리며 많은 누나·형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작품을 시작하면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좋게 봐주셔서 다행이에요. 요즘 어딜 가면 '문권이다', '수애 동생이다'라며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박유환'이라는 제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좋지만 극중 인물로 기억해주실 때는 '그래도 내가 꽤 문권이처럼 보였나 보다'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요. 아직까지는 이 인물을 떠나보내기 아쉬워서인지 제 안에 문권이가 조금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말하다가 불쑥불쑥 문권이 말투가 튀어나와서 놀라기도 하고요. 어쨌든 '천일의 약속'은 여러모로 제겐 참 의미 있는 작품이었어요."


언제나 흥행과 작품성 모두를 충족시키는 '환상의 콤비' 김수현 작가와 정을영 감독의 작품으로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천일의 약속'은 10개월 차 신인 박유환에게 찾아온 엄청난 기회이자 아슬아슬한 시험대였다. 스타 배우들 중에서도 실력파들만 가능하다는 '김수현 사단' 합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벅찬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기대하는 이들을 위해 정말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쏟아지는 관심에 대한 부담감도 생겼다. 과연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본인 스스로도 냉정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좋은 작품에 최소한 누가 되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노력했어요. 작가님께서 워낙 대본을 빨리 주시기 때문에 '반드시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더라고요.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준비를 못했다'거나, '대사를 못 외웠다'와 같은 핑계를 댈 수가 없으니까요. 쉬는 날에도 손에서 대본을 놓지 못할 정도였어요.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잘하고 있는 건지 계속 불안했는데 어느 날 들은 '문권이 잘하고 있어'라는 작가님 말 한마디에 정말 큰 힘을 얻었어요."

유명한 감독과 작가, 스태프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선배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일은 보람차고 짜릿한 경험이면서 동시에 그를 훌쩍 성장하게 만드는 영양분이 됐다. 분명 모자라고 미흡한 점이 많았을 텐데도 모두들 그가 주눅 들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다독이고 배려해준 덕분에 이만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문권으로 살면서 연기를 하는 데 좀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다른 작품에 비해 이번만큼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연기했거든요. 선배님들께서 '네가 문권이니까 누구보다 너 스스로 문권에 대해 가장 잘 알 것이다'라며 다 맡겨주셨어요. 최고의 사람들과 최고의 작품을 함께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얻고 배웠어요. 연기자로서는 물론이고 '박유환'의 인생에 있어서도요."


태어나 처음으로 그려본 꿈, 카메라 앞의 나

 

지난해 2월 MBC-TV 주말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데뷔한 박유환은 이제 겨우 세 작품을 끝낸 '반짝반짝'한 신예다. 열 살이나 많은 조카가 있는 '애어른' 같은 삼촌(반짝반짝 빛나는)과 슬픈 눈을 가진 막내 자객(계백)을 거쳐 아파하는 누나에게 언제나 헌신하는 씩씩한 동생(천일의 약속)으로 안정적인 자리매김을 하기까지 불과 1년여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전까지 배우는커녕 연예계 진출은 생각지도 않았을 정도로 무관심했다는 사람치고는 무척이나 빠르고도 눈부신 성장이다.

"어릴 적부터 딱히 꿈이 없었어요. '왜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걸까'가 저의 고민이자 스트레스였죠. 그러다가 우연히 형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잘 알려졌다시피 그의 형은 그룹 JYJ의 멤버이자 연기자인 박유천이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돌 가수인 형을 둔 덕분에 남들보다 쉽게 연예계 생활을 접할 수 있었지만, 직접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연예계가 겉으로는 화려하고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지를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형이 처음으로 드라마(성균관 스캔들)에 캐스팅됐을 때 연습하는 현장에 따라갔다가 '연기'에 대한 굉장한 매력을 느꼈어요. 제 앞에 유천 형이 아닌 다른 사람이 서 있더라고요. 자신을 지우고 맡은 인물의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아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다'라는 마음과 함께 뭔가에 대한 열망이 생겼어요. 만약 형이 아니었다면, 아니 그날 형을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연기를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여덟 살 때 가족이 모두 이민을 가면서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박유환은 이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었다. 갑작스레 맞닥뜨리게 된 낯선 환경과 노골적으로 배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사람들 속에서 두렵고 서러운 시간을 겪어야 했고, 가정환경 또한 어려워지면서 외롭고 힘들 때도 많았다. 곁에서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던 형이 꿈을 찾아 한국으로 간 뒤 그가 혼자 감내해야 했던 어려움들, 그 무게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버거워졌을 때 돌아온 한국에서 드디어 삶의 목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처음 발걸음을 뗄 때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처음으로 가져본 꿈이었기 때문에 그냥 앞으로 나아가보기로 한 거예요. 아직 부족한 점은 많지만 잘 맞는 것 같아요.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요. 연기할 때만큼은 무척 편안하고 즐겁거든요. 촬영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당연히 피곤하고 지치기도 하지만 촬영장에 들어서면 또 기운이 막 솟아요. 저절로 웃게 되고요. 한번은 열네 시간째 촬영하고 있었는데 제가 막 웃으면서 들어가니까 스태프분들이 전부 '너 좀 이상하다' 그러시더라고요."

연기 활동을 시작하면서 실제 성격도 무척 밝아졌다. 인물을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따뜻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활력이 생기니까 마음도 안정되는 것 같다. 특히 '연기할 때만큼은 뭐든 다 괜찮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이후로는 자신감도 생기고 많이 편해졌다.

"학창 시절에는 사람이 두려웠다고 해야 하나, 이래저래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말도 잘 안 하고 혼자 지내고 그랬지만 실제 저는 알고 보면 장난꾸러기에다 능구렁이 같은 성격이 있어요. 애늙은이 같단 소리도 듣고요. 카메라 앞에 서면서부터 그런 제 본래 모습을 찾게 된 것 같아요. 일상의 모습도,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도, 살아가는 자세도 모두 달라졌어요. 연기를 시작하면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에요. 참 신기하게도요."


완벽한 동생, 완벽한 배우가 되는 그날까지

 

사실 박유환을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형의 이름이다. 미국에서 평범한 학생으로 지낼 때도 팬들 사이에서는 '박유천의 동생'으로 유명세를 탔던 그다. 항상 '누구누구의 동생'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것이 불편하고 싫을 수도 있을 텐데, 정작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다.

"숨기거나 신경 쓰기보다는 형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형은 제게 워낙 특별한 존재였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서로 의지하고 돈독하게 지내왔고요. 6년 전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온 것도 단지 형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에서였어요. '천일의 약속'에서 서연과 문권이 특별한 남매였던 것처럼 저랑 형도 그래요. 그래서 연기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죠. 부모 대신 누나에게 의지하며 자라온 문권의 모습에 제 경우를 많이 대입해봤거든요. 누나가 병에 걸린 걸 알게 됐을 때도 '만약 유천 형이 알츠하이머라면 어떨까?'라고 상상하면서 감정을 잡아나갔죠. 현실이 아니니까 생각하면 좀 웃길 수도 있는건데, 계속 상상하다보니 되게 슬퍼지더라고요."


그렇게 각별한 형제애를 자랑하면서도 정작 서로에 대한 표현은 두사람 다 인색한 편이란다. 겉보기와 달리 그도 형도 무뚝뚝한 편이라 같이 있을 때는 별로 말도 없고 살갑게 굴지도 않는다고. 고맙고 좋은 마음이 있어도 쑥스러워서 겉으로 꺼내놓은 적은 별로 없다.

"요즘 형이 해외 공연 등을 준비하면서 무척 바빴는데도 제가 나오는 드라마를 다 챙겨 보고 모니터링을 해줬어요. 직접적으로 '잘했다', '못했다' 평가는 하지 않지만 새벽에 촬영 끝내고 들어갈 때면 '수고했다, 힘들지, 푹 쉬어' 하면서 챙겨주더라고요. 제가 드라마에서 수애 누나한테 애교도 부리고 살갑게 구는 걸 보고 장난처럼 '나한테도 좀 그래줘'라고도 하던데, 사실 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거예요."

언젠가는 형과 같은 작품에서 함께 연기를 펼쳐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 완벽한 동생이자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첫 발걸음을 뗀 뒤 지금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으면서도 하루빨리 다음 작품을 만나 카메라 앞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는 박유환.

"그동안 착한 캐릭터를 주로 해왔는데 이제는 건방진 역할이나 악역도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지만 도전하는 데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뭐든 다 해보고 싶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는 쉬는 시간 없이 최대한 많은 작품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직 보여드릴 모습이 많거든요."

지난날 형의 연기를 보며 처음으로 '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품었던 소년은 이제 자신의 연기를 보며 '정말 잘하고 싶다'라는 새로운 꿈을 키워가고 있다. 촬영 현장에서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즐거워 보여서 좋다'라는 말을 듣는다는 이 해맑은 미소의 배우는 지금껏 그래왔듯 진심으로 즐기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돌아볼 때마다 한 뼘씩 커나가는 든든한 동생 같은 그를 이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어서 마음이 참 뿌듯해진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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